2018. 7. 10. 03:13

1.


이상한 하루.


독일사람, 독일유학동안 독일 국가대표팀 팬이 된 몽골사람 등 별의 별 사람들과 축구를 봤다. 보통 축구는 새벽에 방구석에서 혼자 보는 거였는데.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네팔 형님들이 나보다 더 신나서 축하해주더라.


경력이 일천한 노무사 주제에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잔뜩 만나서, 별의 별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있다. 조금만 더 영어를 잘 했더라면, 나도 좋고 두목한테도 좋았을텐데.. 후회가 크다.


내일 패널 디스커션 잘 마무리해야 할텐데. 아마 잘 될거라 확신하지만.


그래도 한국 돌아가면 영어학원 등록해야겠다.


사진찍을 경황도 없어, 사진은 오늘 점심에 먹은 네팔 가정식 피자(?)로 갈음한다.


아 근데 호텔 침대 옆 스탠드 조명은 원래 못 끄는건가..? ;;



2. 


어렸을 때는 해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어느새 이걸 다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정치학 전공이지만 국제정치수업은 다 제꼈고, 신문을 읽을 때도 국제면은 그냥 넘겨버렸었던 걸 기억해 보면, 대학 입학 전의 일임은 분명하다.


어차피 직업도 국내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 국내만 넓게 살피는 걸로 내 세계는 충분히 넓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정말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며칠동안 정말 넓은 세계를 경험했다. 중요한 건 외국을 나가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아는 것이지 않나 싶다. 그래야 내 삶, 이 사회가 잘 보인다. 그러고 보니 비교정치학이 이런 걸 하는 학문 아니었나?


예를 들면,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아시아 친구들은 다른 나라에 대해 질문을 할 때 그 나라의 인종, 종교, 언어를 먼저 묻는다는 점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사람은 신경쓰지 않을 이런 것들이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몹시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국 정부가 동티모르 노동자들을 한국으로 초빙할 때,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받았다. 이것이 적법한 것이냐?'는 충격적인 질문도 받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사안에 대해서 좀 알아 볼 생각이다. 아.. 일자리도 구해야 되는데..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지만 내일 견학가려면 일찍 자야 하니 그만 해야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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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ein.beruf.gd
2018. 7. 10. 03:12

나는 내 삶의 거지같은 부분도 건너 뛰지 못하고 하나하나 다 겪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는 다른 사람의 삶이래봤자 다 이쁘게 가공된 것들이다.


심지어 그 이쁘게 가공된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겁나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래서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고 하는 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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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10. 03:08

2018. 1. 2. 


천막농성하고 그렇게 된 지는 이미 좀 됐는데 왜 갑자기 기사화가 되었나 했다. 물리적 충돌까지 일어나 부상자도 나온 상황이라 하니.


창동역 주변 노점들의 정비가 필요한 것은 확실했다. 9시, 10시만 되어도 역 출구 바로 앞 부분이 취객들로 만원이어서 지나다니기 불안할 정도였고, 공영주차장 가는 쪽 길은 노점들이 인도를 절반이상 차지하고 있어서 비라도 오는 날에는 지나다니기가 참 곤란했었다.


주민들의 입장에서 노점들로 인해 겪는 불편은 직접적인 것이고, 노점상들의 생계문제는 남의 일이다. 심지어 세금도 안 내는 불법 노점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근 한달 정도 공사때문에 노점들이 임시 철거되어 미관이 나아진 상황을 주민들이 이미 경험하기도 했고, 주변 상가에 이것저것 노점을 대체할 수 있을 가게들이 입점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어떻게 봐도 이겨내기 어려운 싸움인데, 역시나 결국은 전노련식 방법으로 나아가는 모양이니.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조금 뻔해지지 않았나 싶다.


독서실 다닐 때 근처 와플 노점 아주머니가 좋은 분이셔서 단골이 되었는데, 참 안타깝게 되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552711&plink=ORI&cooper=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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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10. 03:01

2017. 10. 21.


재미가 없어서 원전 문제에는 관심을 안 갖고 있었는데, 한 기사가 눈길을 끈다.


『20대와 30대의 경우 1차 조사 때 각각 53.3%, 38.6%였던 판단 유보층이 4차 조사에서 각각 5.2%, 8.1%로 급격히 줄면서 이들 다수가 건설 재개 쪽으로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20, 30대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종합토론회에서 건설 재개 측이 20, 30대의 민심을 사로잡는 과학적 접근을 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나온다. 재개 측은 토론회에서 “원전은 경주 지진보다 63배 규모가 큰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면서 안정성을 강조하면서 “건설 중단 시 연인원 720만명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취업 문제에 민감한 20ㆍ30대가 건설 재개로 방향을 튼 계기를 던져 준 셈이다.』


최근 청년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합리? 이성? 올바른 표현을 찾기 어렵지만,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이런 기준에 의해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청년들은 투표탄력성이 높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투표율이 일정하게 나오는 반면, 청년들은 대형 이슈가 존재하거나, 균열구조가 명확한 경우에만 높은 투표율을 보인다.


이들이 판단하는 기준은 객관적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 보다는 자기자신의 주관적인 이해관계에 충실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하다. 이들의 기준을 가치판단 할 수 있느냐?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가치관이 나쁘다는 주장만을 늘어놓을 뿐이라면, 결코 청년들을 같은 편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원전문제에서 청년들이 건설 재개를 선택한 것은 안정성, 일자리에 대한 건설 재개측의 주장이 청년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건설 중단측은 이를 뛰어넘을 주장을 내어놓지 못하여 외면을 받은 것이다. 꼭 단기적인 이해관계가 아니었어도 됐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재개했을 때 발생하는 장기적인 손실을 합리적으로 전달했다면 이렇게까지 압도적으로 관망층이 건설 재개 쪽으로 기울었을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보수화" 되었다며 비난을 받고 있지만, 실은 이를 "탈정치화"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통계상으로도 그렇다. 자신의 정치성향을 "보수", "중도", "진보" 중 하나로 고르라는 설문에서 20대로 갈 수록 중도는 늘고 보수, 진보는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왜? 내 생각은 이렇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이제 자기 자신을 "보수"나 "진보"라는 협소한 틀에 가두지 않는다. 전술한 바와 같이 투표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 뿐 아니라, 어떤 정치성향을 지지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탄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반면 기성 정치권은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우리편에 어필하는 정치에 여전히 매달려있다. 낡은 반공주의, 지금 당장 탈핵.. 이런 낡은 도그마들에 매달려있는 기성정치가 지금의 청년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일까.


소구하려는 대상의 이해관계와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합리적으로 연결하여 전달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에게 미래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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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10. 03:01

2017. 9. 30.


주거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Yes or No로 답하라 한다면 나는 역시 No에 가까운 사람이다. 도봉구에 산 지 20년, 이 집에 산 지가 벌써 15년이 다 되어가니, 어머니한테 쫓겨나지 않는 이상 나를 주거문제의 당사자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울 내 최빈지역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도봉구는 꽤 살기 좋은 곳이다.


오늘 재밌는 얘길 많이 듣고 나니, 주거문제가 노동문제와 꽤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양자 모두가 형식적으로는 대등한 당사자 간의 계약관계인 것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권력관계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가가 심판의 역할이 되어 이러한 비대칭관계를 일정하게 조정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 오늘날의 한국사회처럼 상당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근대 시민법의 이념인 소유권 절대 원칙에 대한 제한 또는 예외라는 점에서 주거문제와 노동문제는 닮아 있다. 한 사람이 노력하여 얻은 재산권 행사는 존중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면 국가정책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산의 형성이 오롯이 개인의 노력의 산물이라고만 보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 상속과 같은 우연적 요소, 교육이나 SOC와 같은 사회적 자본이 그 재산형성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양자는 공공복리와 관계있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 점에서도 주거문제와 노동문제는 닮아 있다.


근로자와 임차인은 해고와 계약만료 통보에 의하여 생존 자체에 심대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권력의 비대칭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용자, 임대인은 거의 일방적으로 해고나 계약만료여부를 결정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용자, 임대인의 권한행사를 일정부분 제한한다고 하여 생존 자체에 심대한 위협까지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물론 재산에 손실을 입는다는 것은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손해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권한행사를 "일정부분" 제한하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정치의 역할이 바로 이 것이라 본다. 근로자와 임차인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서 사용자와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시킬 것이냐를 결정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납득은 할 수 있는 결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


다만 우리사회의 노동관계의 경우, 장기간의 발전과정을 통해 정당한 이유없는 해고의 제한이라거나, 근로계약상 사용자의 부수적 의무로서 안전배려 의무와 같이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그나마 갖춰져 있는 반면,


주거문제는 임대인의 최소한의 안전배려의무조차 인정되지 않고 있고, 거주기간 갱신여부를 사실상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개선이 상대적으로 시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Posted by mein.beruf.gd
2018. 7. 10. 02:55

2017. 6. 29.


블라인드 채용이 대체 지금 무슨 의미를 갖는 제도인지 모르겠다.


현업에서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배운 바에 의하면 한국 기업들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직무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직무분석, 평가, 설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각 구성원에게 할당되는 직무의 정의, 내용, 범위, 자격요건이 애매해진다.


이는 구직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구직자에게 맡길 직무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채 확보관리를 행하고 있다. 일단 스펙 좋은 애를 뽑아놓고 적당히 과업을 배분하지.


이 상황에 학벌인플레이션으로 치솟은 기초율을 끼얹으면, 기업은 구체적인 직무자격요건을 요하는 대신 줄 세우기 편하고 평가가 쉬운 일반역량을 기준으로 모집, 선발을 하게 된다. 실제 직무와 관련성이 낮아, 타당성이 몹시 떨어지는 토익, 학점, 학벌과 같은.


애초에 무엇을 갖고 경쟁시킬 것인지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기에 학벌을 가지고 잘라 온 것일텐데, 학벌을 가지고 줄을 못 세운다면 기업들이 뭘 갖고 넘치는 구직자들을 줄 세우게 될까.


어차피 그 자리는 마찬가지로 타당성 떨어지는 지표가 채우게 될 거고, 공정성 시비는 계속 나오게 될 텐데. 이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여지가 있나.


이제 와서 직무중심 선발을 한다고 언플들을 하고 있는데, 기업들이 직무중심 인사관리를 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직무중심 선발이 가능하겠나. 더 코미디인 건 구직자들이 직무수행능력을 키울 마땅한 방법도 없다는 것. 학교에서 가르치길 하나. 인턴기간에 가르치길 하나.


+자사고 외고 폐지가 교육 하향평준화를 가져온다는 주장엔 웃음만 나온다. 일부 계층 애들 모아서 수능 더 잘보게 하는 교육이 사회교육수준 상승에 기여했다고?

Posted by mein.beruf.gd
2018. 7. 10. 02:44

2017. 3. 11.


아마 반년 전의 나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알려준다면 개소리 하지 말라는 소리나 들었을 테다. 그 정도로 지난 반년은 믿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탄핵안 가결때도 썼듯,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기존의 사회체제를 해체하는 데 성공하고도 새로운 사회체제를 바르게 수립하지 못했던 과거들을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판단컨대, 구체제의 해체를 위해 집결한 동력이 신체제 구성의 국면으로 전환된 이후에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조정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던 것이 그 실패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사회 변화에 관한 온갖 요구들이 쏟아져 나올텐데, 이 요구들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하느냐가 향후 사회체제를 바르게 수립하기 위한 중요한 선결과제가 될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이냐의 문제에 의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이냐의 문제가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도자를 숭배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난 4년간 잘 목도해왔다. 이 전철을 밟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합리적 설명 없이 특정한 요구들을 후순위로 밀어버리는 지난동안의 정치적 관행과, 반대로 아무런 합리적 이유없이 지금 당장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해달라 떼를 쓰는 최근의 트렌드도 사회적 요구의 조정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짧으면 반년, 길어도 2년 정도. 사람들은 그렇게 인내심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필시 그 기간 안에 실수를 하나 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제로, 그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사회체제가 계속되어야 함을 납득시킬 만큼의 당위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기에 당장의 획기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 보다는, 장기적인 철학을 수립하고 그 틀 안에서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있는 작은 변화를 통해 그 장기적인 철학의 효용성을 체감하도록 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


사족을 덧붙이자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요구를 조정하는 것 뿐 아니라, 우리 편이 아닌 이들과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할지에도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한다. 최근의 상황은 절대 설득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40%의 사람들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적폐청산은 당연히 이뤄야 할 숙제이다. 그러나 적폐청산을 이유로 평소 꼴보기 싫었던 이들을 공론장 밖으로 쫓아내려는 관성적 태도도 경계해야만 한다.


"샤이트럼프"라는 말이 많은 이들의 비웃음을 샀지만, 이게 그렇게 쉽게 무시할 만한 성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공론장에서 쫓겨난 이들은 음지에서 또 다른 사회구조의 해체를 목적으로 규합한다. 이들의 동력은 분노이기에 결속력이 강하며, 쉽게 외연을 확장하고, 허위정보에 잘 속는다.


우리는 이런 집단을 이미 한 번 본적이 있다. 일베라고.


세상은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한다니까, 언젠가는 우리 턴을 넘겨주게 될 날도 오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아놀드 비닉과 공론장 안에서 싸우게 될지,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로 공론장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식으로 상대자를 대하는 지에 달려있는 지도 모른다.

Posted by mein.beruf.gd
2018. 7. 10. 02:42

2017. 2. 18.


탈정치적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시간이 없기도 해서 의견모임 활동도 쉬고 정치글은 안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참 안 된다.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적 수사(rhetoric)'라는 관대한 기준을 다른 지향을 가진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에게도 보여주기를 바란다.


정치인 개인이 성소수자의 권리보호에 대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나 개인이 그 입장에 반대한다는 사실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비판 혹은 외면이라는 댓가를 감내해야 한다. 이것 또한 하나의 정치적 입장 표명이기 때문이다.


그 비판과 외면을 피하기 위해 정치적 수사라는 항변을 제기하는 것도 가능은 하나, 반대자들에게 그 항변이 당연히 인용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내가 판단하기에도 이 항변은 무척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동안 성소수자의 기본권 보호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던 정치인 본인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을 명시적으로 해버린 이상, 오히려 "차별에 반대한다"는 말이 더 수사에 가깝게 평가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 정치가의 지지자들이 지금껏 다른 정치가의 지향과 수사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왔다는 점이다. "대연정"하자고 했던 안희정, "나는 친노(親勞)"라고 했던 심상정이 어떻게 됐던가. 지금껏 그 정치가는 그 엄격한 잣대에 잘 부합해왔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이에 대해 관객들은 당연히 똑같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되는 것이고, 지지자들은 외통수에 빠진 셈이다.


메갈리아 사태때 '너희의 입장만이 정답인줄 아느냐'며 극렬 반발하던 사이트들이 그 정치인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메갈리아의 옹호자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완고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보여 쓴웃음을 짓게 하는데, 그때도 많이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할 수밖에 없다. 실체도 없는 정의감과 도덕적 우월감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고, 그것 없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나만 옳다고 고집하는 '독선'에서 벗어나, 다른 지향에 대한 관용을 보이면 오히려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노파심에 몇 마디를 더 덧붙여 보자면, (소수자로서의) 정체성만을 최우선적으로 내세우고 정당성에 대한 소명을 건너뛰어버리는 정치행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이고, 남의 행사에 가서 어깃장을 놓는 것 또한 정당하지 못하다고 평가함을 전제한다. 또한, 나는 모든 사람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으며, 내심의 판단의 수준에서는 혐오하는 것까지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이다. 요즘 이런 걸 안 써붙여 놓으면 내용은 안 읽고 이런 걸로 시비를 트는 것 같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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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10. 02:37

모두가 화가 나 있는 듯 하다. 화를 낼 대상만 나타나기를 기다리고들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분노는 무언가를 이루게도 하지만, 거기에 분명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배운 말로 표현하자면, 분노는 "탈구"의 기능은 수행하나 "접합"의 기능은 하지 못한다. 일상언어로 하자면, 현사회질서를 "해체"는 할 수 있어도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다.


분노가 세상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 이후의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굉장히 길고 지지부진한 과정을 요한다. 분노만으로는 이 과정을 버텨내기엔 부족하다.


사회의 재구성이 잘 수행되느냐, 아니면 또 다른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냐는 결국 최초의 분노를 어떻게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끄느냐에 달리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민중의 분노를 이용해 피렌체에서 메디치가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지만, 새로운 질서를 바르게 구성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결국 사보나롤라는 그 분노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그 자신조차도 반대파 민중들의 분노에 휩쓸려가고 말았다.


분노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냉정히 살피고, 그 정도를 잘 제어하는 데 실패하면 결국 그 분노에 같이 휩쓸려가게 될 것이다. 특히, 이전에 휩쓸고 간 분노의 희생자들이 또 다른 분노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Posted by mein.beruf.gd
2018. 7. 10. 02:36

얼마 전 어머니랑 얘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때 마침 저출산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좀 낳아줘야 사회가 유지가 될텐데.."라며 걱정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 뿐이었다. "왜 그래야 하죠?"


나는 우리 부모 세대를 존경한다. 그들은 대단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들 대다수는 자기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국가의 한 부분으로서 국가에 충실하며, 자기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국가에 충성해야 하고, 국가가 잘 되기를 바랐다. 산업의 역군이 되어야 했고, 자식을 낳고 바로 기르는 부모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존경한다고 하여 그런 삶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동의한다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경탄에 가까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과 같은 삶을 살 자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자신을 죽여 열심히 "멸사봉공(滅私奉公)"한 결과, 그들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우리 세대는 국가를 위해 자기 자신을 뒷전으로 미루고 살아온 우리 부모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돌아왔는지까지. 그렇기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우리 중의 누군가도 열심히 일을 하고 가족을 이뤄 아이를 낳고 기를 테지만, 그것이 국가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시대는 이렇게 변했다. 누군가는 어린 놈들이 이기적이어서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되었다고 비하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원래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서로가 권리와 책임을 부담하는 계약적인 관계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국가가 개인을 지켜주지 않는데, 개인이 국가를 지켜줘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말이 폭발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시대는 이렇게 변했지만, 망할 조선은 전혀 변하질 않았다. 예전에야 국가가 잘 되어야 너도 잘 살게 된다는 사탕발림이 먹혔겠지만, 이미 한 번 그 사탕발림이 뻥카였다는 게 들통이 났음에도 예전에 써먹었던 그 방법을 고스란히 또 써먹는다는 건.. 염치가 없는 건지 멍청한 건지.

Posted by mein.beruf.gd